성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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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석상에서 성 김 대사. 옆은 존 케리 전 국무부장관이다.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 이름은 김성용(金星容). 부친 김재권 주일 공사[1]가 김대중 납치 사건에 개입한 이후 온 가족이 미국에 망명하였고, 그가 성년이 된 1980년에 완전히 미국인이 되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아이비리그 스쿨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검사 생활을 하다가 외교관이 됐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조셉 윤 전 대북특별대표 등과 함께 미국의 학계 및 외교가에서 대표적인 한국계 한반도 전문가로 손꼽힌다. 중학교 1학년까지 한국에서 생활해서 한국어도 구사할수는 있지만, 공식석상에서는 무조건 영어로 말한다.[2]
김대중 정부 시절에 6자회담 미국측 대표단으로 활동했지만, 당시 북한이 핵무장을 다시 본격화하면서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17년부터 필리핀 대사로 옮기면서 잠시 한반도 정세와는 거리를 두는 듯 했는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북한 관련 정세가 바뀌면서 다시 북한과의 협상을 맡고 있다.
미국에서 살면서 아이비리그 스쿨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검사 생활을 하다가 외교관이 됐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조셉 윤 전 대북특별대표 등과 함께 미국의 학계 및 외교가에서 대표적인 한국계 한반도 전문가로 손꼽힌다. 중학교 1학년까지 한국에서 생활해서 한국어도 구사할수는 있지만, 공식석상에서는 무조건 영어로 말한다.[2]
김대중 정부 시절에 6자회담 미국측 대표단으로 활동했지만, 당시 북한이 핵무장을 다시 본격화하면서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17년부터 필리핀 대사로 옮기면서 잠시 한반도 정세와는 거리를 두는 듯 했는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북한 관련 정세가 바뀌면서 다시 북한과의 협상을 맡고 있다.
3. 행적 [편집]
3.1. 제22대 주한미국대사 [편집]
3.2. 주필리핀 대사 [편집]
주한 미국대사를 마친 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역임하던 중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2016년 9월 28일 연방 상원 전체회의에서 인준이 승인됨에 따라 필립 골드버그 주 필리핀 미국대사의 후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따라 성 김 대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주요 동맹국 대사를 두 차례나 맡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성 김 대사는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이자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하고 있는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로서 외교 현안들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특히 취임과 함께 초강경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인권 이슈 등으로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잇달아 미국을 겨냥한 강성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도 맡게 됐다.
성 김 대사는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이자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하고 있는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로서 외교 현안들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특히 취임과 함께 초강경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인권 이슈 등으로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잇달아 미국을 겨냥한 강성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도 맡게 됐다.
3.3. 북미정상회담 [편집]
3.4. 북미정상회담 이후 [편집]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에 자주 참석하는 듯 하다. 언론에도 자주 포착되고 있다. 2020년 주 인도네시아 미국 대사로 지명되였고 10월 21일 취임하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에 임명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에 임명됐다.#
4. 여담 [편집]
-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서울에 살았던 이민 1.5세대라서 한국어도 아주 유창하다. 하지만 주한 미국대사 시절에 본인이 한국계인 것을 의식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주한 미국대사 임기 막바지에 SBS 좋은아침에 가족과 함께 출연했으며, 모두 한국어로 인터뷰했다.
[1] 본명은 김기완, 공군 장교 출신으로 창랑호 납북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2] 당연하게 공식석상은 미국을 대표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통용되는 영어로 말하지만 사석에서는 한국어로 얘기하는게 한국측의 환심을 사기 쉽기 때문에 한국어로 얘기하는 모양.[3] 납치사건의 피해자였던 김대중 대통령도 2008년 성 김이 미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납치 사건은 그가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관계가 없는 일이며, 아버지의 잘못으로 아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4] 정확히 말하자면 손지창의 경우에는 생물학적으로는 성 김 대사의 사촌이 맞지만 법적으로는 아니다. 임택근이 자기 아들로서 호적에 올리지 않고 외면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임택근 일가 및 친척과 남남 사이이기 때문이다. 손지창 본인도 방송가 고위층의 압력으로 화해하는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보였을 뿐, 부친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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